점(占)과 정신분석 reading

인연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꼭 나에게 좋은 사람은 아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소위 "코드"가 맞는다는 사람들을 만나고, A도 아니고 B도 아니고 바로 '너'와 나는 친구가 된다. 살면서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모두가 그 인연이 아니라서, 그 모두가 나의 친구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어떤 말이나 사건, 책이나 영화도 이와 비슷한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닥 의미없는 것들이 나에게는 경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경전이 된 책과 사람들을 곰곰 따져보니, 그들의 철학과 비전이 대동소이하다. 각자의 영역에서 얻어가는 깨달음, 그들이 나름의 결론으로 향하는 그 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의 이 두 책은 표지 면에서나 문체 면에서나 모든 게 달라 보인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두 책은 놀랍게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렇게.



만에 하나 '프로페셔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점술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기본적으로 '프로페셔널'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타로 점에서는 카드 뒤집기보다 뒤집힌 카드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해석은 '프로페셔널' 점술자가 아닌 본인이 직접 하는 편이 옳아 보인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적어도 생판 모르는 남인 점술자가 무작위로 뒤집힌 카드를 보면서 가닿을 수 있는 깊이라면, 나 자신의 시선은 가 닿고도 남는다.
사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천체 운행의 기운과 조화를 머금은 신통력이 아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은 시력이다. 나 자신을 향한.

—한동원, 『나의 점집문화답사기』




분석심리학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될 때 우리가 영웅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강철을 휘고 하늘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세부들을 자신의 방식대로 만들어 가는 인생의 영웅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천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기준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보살필 수 있어야 그후에 남도 도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된 상태, 즉 자신 안에 있는 힘을 믿는 성숙한 상태에서만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자신을 '...밖에 안 되는' 존재로 비하하는 닫힌 체계 속에서는 결코 변화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김서영,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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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점집문화답사기』의 <타로점>편에서, 저자는 말한다. 결국 그 패를 읽어내는 것, 자신의 과거,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건 자기가 하는 거라고. 영험한 신내림이나 오천년 동양철학의 빅데이터의 결정체 사주명리학도 물론 어떤 면에서 유의미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결국 그것들을 해석해 내는 힘, 보아내는 힘은 자신에게 있다. 내가 병아리눈곱만큼 사주를 공부할 적에 느낀 점 아니 배운 점은 내 놀라운 운명의 계시나 비밀이 아니라 이건 어떤 해결책 혹은 탈출구(나가는문)가 아니라 그냥 입구일 뿐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정신분석도 마찬가지. (드라마에서 본 바에 따르면) 나는 그저 편안한 의자에 기대어 누워 정신분석가가 내 문제를 파악해 주고 해결해 주는 것을 기대하지만 이 역시 사주와 마찬가지로 그저 나의 문제로 혹은 문제해결로 들어가는 문에 불과하다. 결국 그 꼬불꼬불한 미로를 두드리고 밀어보고 당기고 바깥으로 나오는 건 자기가 풀어야 할 과제다. 스스로 이렇게 알아서 잘 하기가 어려워서 엄마가 발명된 거라고는 하지만 엄마들도 요새 바쁘다 뭐.

용하다는 점집을 수소문해서 방문하고 실험도 하고 조교투입도 하고 저 멀리 제주도에 계시다는 분과 전화로 타로점을 보는 바람에 엄청난 전화비를 감당하면서까지 『나의 점집문화답사기』의 저자가 하고팠던 말은, 자신의 몸이 고장났을 때 신경안정제이자 항우울제로서 영화 몇천 편을 보고 치유를 받았다는, 라캉과 융과 프로이트를 공부하는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의 저자의 것과 같다. 자신을 보는 것, 자신의 삶을 보는 것, 어디가 삐걱대고 있고, 어떻게 하면 좀더 나아질 수 있는지 자기 힘으로 치열하게 생각해 보는 것. 삶의 이유 내지는 목적이라는 말을 거창하게 갖다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이것이 아니라면 과연 뭘까. 나는 도대체 뭐하자고 이렇게 공기도 안 좋고 살기도 팍팍한 여기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걸까. 모든 것에 이유가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하건 아니건 대체로 모든 것엔 이유가 있더라. 나의 삶, 우리의 삶에도 아마 그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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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님 말고.




덧글

  • 올리브 2014/06/03 09:58 # 답글

    반년 정도 정신분석을 진행해본 나름 경험자로서... 많이 공감합니다. 좋은 포스팅 잘 보았어요,
  • bad robot 2014/06/04 00:05 #

    유경험자의 공감이라니, 뭔가 무게가 느껴지네요. 댓글 감사해요..^^
  • 2014/06/03 12: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6/04 00: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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